tv의 주인
하얘   |   20190924

하얘 - tv의 주인

여자와 도박에 빠진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너무 아끼고 사랑하던 할머니
그에 지쳐 집에서 쫓겨나듯 도망 친 어머니.

초등학교 6학년 어머니가 집을 나간 뒤 급속도로 망가져 가는 생활과 마주했지만 당시 너무 순수하고 어렸던 누나와 나는 이 상황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도 모르고 쓰레기 가득하지만 텅 빈 것 같은 방 안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하루를 보냈다.

같은 때 아버지는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며 한 여자를 데려왔고 그 여자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룸살롱에서 아가씨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자는 원래 없었다는 듯이 사라졌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누나와 함께 살게 됐다.

할머니에게는 밥 먹듯이 너희만 태어나지 않았으면, 나가죽어라 같은 존재를 부정하는 폭언을
아버지에게는 억지스러운 가정교육과 물리적 폭행을
그 두 사람을 보며 아무런 반응도 없던 할아버지에겐 무관심을 받으며
누나와 함께 화풀이 대상 무관심의 대상으로 청소년기를 보냈다.

중학생 때 전단지 아르바이트를 해서 조금씩 모은 돈으로 핑크색 중고 자전거를 샀었는데
교통사고가 나는 바람에 자전거가 고장이 났고 차주에게 자전거를 물어주겠다는 약속과 함께
명함을 받았다.
학생 신분이라 보호자였던 아버지가 합의를 봤고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어
아버지에게 사정을 묻자 돈을 받았다 하여 자전거 사 달라 하니 대수롭지 않게 돈 없어라 하며 무시한 체 tv 채널을 돌리던 아버지의 모습에서 처음으로 역겨움을 느꼈다.

고등학생 시절은 매일같이 아버지같이 살지 않기 위한 방법만 고민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집이라는 공간이 제일 불편한 돈 없는 청소년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썩 좋지 못했다.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어영부영 시간 보내면서 성인이 되기만 기다렸다.

고1이 되던 해 아버지가 조그만 닭꼬치집을 차렸는데 같은 해 스무 살이 된 누나는 아무 준비 없이 사회생활이 가능한 나이가 되어 아버지가 하는 일에 휘둘리게 됐다.
아버지는 넌 할 줄 아는 게 없으니 이거라도 해라라는 식으로 누나에게 가게일을 돕게 했고 나도 방학이나 휴일엔 가게 일을 도왔다.
나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습보다 가게 한편에 누워 잠자는 모습을 더 많이 봤었다

고3이 되던 해 닭꼬치집은 진작에 망했고
아버지가 새로운 여자를 만나면서 구산동으로 이사를 가게 됐다.
그 사람도 자식이 두 명 있어서 총 여섯 식구가 됐다.

아버지가 연신내역 쪽에 작은 호프집을 차렸다.
업종 특성상 나는 성인이 아니라 고용이 안돼 일을 하지 못했지만 누나는 사정이 달랐다.
심부름 겸 가게에 가는 일이 종종 있었고 함께 밥을 먹을 때가 있었는데
예전부터 식사 때마다 아버지는 누나에게 커서 뭐 될래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그 대화에 화가 나 말다툼을 했고 몸싸움까지 번졌다.
후에 아버지에게 네가 내 제사 지내 줄 사람인데 미안하다며 처음으로 사과를 받아봤는데
나는 그 사과에서 아버지에게 자식은 본인을 위한 수단이나 도구에 더 가깝다는 걸
다시 한번 느꼈다.

스무 살이 되던 해 돈을 벌면서 내가 잘하는 걸 찾으려 애쓰며 살았다.
우연히 영어를 배워볼까 인터넷 검색을 하다 중국어 학원 사이트에 들어가게 됐는데
원장이 외삼촌이였다.

스물세살 음악을 하기로 마음먹고 군대 갈 준비를 했다.
아버지는 그 이후로도 새로 하는 일들이 잘 풀리지 않았고
아버지의 새 여자도 자식과 함께 어느날 갑자기 원래 없었다는 듯 사라졌다.

친구들과 군대가기전 강원도로 여행을 갔다.
숙소에 겨우 도착했을때 즈음 아버지에게 울면서 전화가 왔다.
누나가 엄마를 만나러 대구로 갔다며 너도 지금 가라 말했다.
초등학생 이후부터 어머니와 생이별을 한 상태라 수화기 너머 목소리도 들어본 적 없는 상황에서의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했고 나는 그 당시 상황에서 어머니를 보고싶은 마음이 없었다.

아버지의 끈질긴 부탁에 여행을 뒤로하고 어머니를 만났다.
눈물 흘리던 누나와 어머니에게 이제 행복한 일만 있을 거니까 울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가 다시 어머니와 잘해보고 싶다 했다 나는 그 이후 아버지를 지금까지 보지 않고 있다.

어릴적 여느때와 같이 tv를 보며 빨래를 개던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왜 집에만 있고 친구랑 놀러 안 나가냐고
엄마는 tv가 친구라고 말했다.

어머니를 다시 만났을때
그 말의 뜻을 너무 늦게 알게돼서 미안하다고 용서를 구했다.

이러한 어머니에 대한 감정을 담은 음악이다.

[Credit]

Produced by 박수호
Composed by 박수호
Lyrics by 박수호
Arranged by 박수호
Recording engineer by 박수호
Mixed & mastered by 박수호
Photograph & Artwork by 양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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